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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할미 마고에서 시작된 한민족 (30)

진시황으로 물들어 버린 남해 금산
김윤국 기자 / 입력 : 2019년 09월 17일
단기4352년 서기2019년

【우리 민족의 선조이신 단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 하시는 하늘그림궁 성미경님의 글과 그림을 제공받아
연재로 올립니다. 우리민족의 뿌리라 생각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 <그림 : 홍익가정 > 중앙에 위치한 배달나라 18대 거불단 한웅천왕과 웅녀왕모, 그 앞 손자 손녀 그리고 맨앞 오른쪽은 단군왕검과 비서갑 왕모, 왼쪽은 부루태자와 태자비, 맨 뒷쪽 왼쪽부터 단군왕검의 두번째 아드님 부소, 부여, 부우
ⓒ hy인산인터넷신문

진시황으로 물들어 버린 남해 금산

몇년 전 부터 제주도 서귀포와 거제도 남해에서 각석(사진)으로 웃기지도 않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서귀포시의 서불과차를 주제로한 축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남해 금산 양아리 각석을 제주도 서복전시관 광장에 판각하여 광고하기에 이른다. 거기에 거제도까지 이 각석으로 서불과차지라고 가세, 그런데 이 각석이 있는 남해는 조용하다.

서불과차라함은 서복 일행이 중국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찾으러 산동성 낭야에서 출항하여 남해 금산 아래 백련포와 두모포에 도착하여 금산에 불로초를 찾아 나선다. 이 때 서복이 금산에 머물며 남긴 흔적이 있는데 이것이 서불과차라는 것이다.

그 흔적이 다름아닌 양아리 각석이란다. 그 뒤 서복이 제주, 거제, 부안, 바다 건너 일본 등을 돌며 불로초를 찾아 다녔다는 썰~인데, 남기려면 다니는 곳마다 남길것이지 현재 남아있는 서복이 남긴 흔적은 남해 양아리 각석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 hy인산인터넷신문

남해에는 진시황으로 인해 오인되고 있는 유적이 이 곳 뿐만이 아니다.
남해에는 단군의 두번째 아드님이신 부소의 이름을 딴 명소가 있다. 일명 부소대, 부소암. 거기 설치된 안내판의 설명이 참 가관이다.

"이 바위는 옛날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扶蘇)가 이 곳에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는 전설이 남아있어 부소암이라 부르고 있다."

이 안내판은 필자가 10년도 전에 답사를 해서 파악한 사안이지만 지금도 내용의 수정, 보완없이 그리 게시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부소는 단군왕검의 두번째 아드님이 부소다. 진시황의 아들 영부소를 이름이 같다고 해서 이 곳 부소암에 거져다 붙히는 것은 억지다.

단군왕검께서 일찌기 네 분의 아드님을 통해서 지금의 한반도를 굽어살피도록 하시어 아드님들은 천제단을 쌓고 여러 전설적인 일화를 많이 남겼음을 우리 말이나 유적,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에서 살필 수가 있다. 그 중 마니산 참성단과 전등사 삼랑성은 부소, 부우, 부여를 유적에 개념지어 놓고 있고, 부소암에서 일컬어지는 부소는 부싯돌, 부시깃의 어원이 된 장본인이다.

이러한 유추해 볼 정황적 증거가 있는데도 굳이 영부소를 부소암에 가져다 붙혀 놓은 경우는 무슨 경우란 말인가. 

ⓒ hy인산인터넷신문

단군왕검의 아드님들에 대한 기록은 곳곳에서 전해진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에

檀君旣建都於壬儉城, 乃築城郭, 建宮室, 置主命 主穀 主兵 主刑 主病 主善惡及主忽諸官, 以其子夫婁爲虎加, 諸加者也. 神誌氏卽古神誌氏之後,下皆倣此爲馬加, 曰主命 高矢氏爲牛加, 曰主穀 蚩尤氏爲熊加, 曰主兵 二子夫蘇爲鷹加, 曰主刑 三子夫虞爲鷺加, 曰主病 [周](朱)因氏爲鶴加, 是主善惡 余守己爲狗加, 是分管諸州也. 稱爲檀君八加, 乃殺白牛, 以祭天于太白之麓.

단군이 임금성에 도읍을 세워 성곽을 축조하고 궁실을 지으며 생명과 곡식과 병사와 형벌과 질병과 선악과 및 지방의 일 등을 주관하는 여러 관직을 설치하였다. 아들 부루(夫婁)는 호가(虎加)로 삼아 모든 가(加)들을 통괄하게 하였으며, 신지씨(즉 옛날 신지씨의 후손이다. 다음의 모든 것도 이와 같다)는 마가(馬加)로 삼아 생명을 주관하게 하고, 고시씨는 우가(牛加)로 삼아 곡식을 주관하게 하고, 치우씨는 웅가(熊加)로 삼아 병사를 주관하게 하고, 둘째아들 부소(夫蘇)는 응가(鷹加)로 삼아 형벌을 주관하게 하고, 세째 아들 부우(夫虞)는 노가(鷺加)로 삼아 질병을 주관하게 하고, 주인씨는 학가(鶴加)로 삼아 선악을 주관하게 하고, 여수기(余守己)는 구가(狗加)로 삼아 모든 고을을 나누어 관리하게 하였다. 이를 일컬어 ‘단군팔가(檀君八加)’라 하고는 흰소를 잡아 태백산 기슭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

125년 7월 5일에 셋째 아들 부우(扶虞)를 강화(江華)에 보내 전등산(傳燈山)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게 하시며, 제천단(祭天壇)을 마니산(摩尼山)에 쌓고 하느님께 제사하시니, 동방 민족이 하느님께 제사하는 풍속은 시조 단제(檀帝)때부터 시작되었다. 150년에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니 왕위에 계신 지 57년이며 제위(帝位)는 93년이다. 백성들이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사해(四海)가 다 음악을 그치고, 집집마다 시조 단제의 신위(神位)를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경배하였다.

태자 부루(扶婁)가 왕위에 오르니 제 2세 단제시다. 부루단군 재위 첫해 9월에 가운데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遼西)으로 삼고, 셋째아우 부우(扶宇)를 동해와(東海王=東海邊)으로 삼으니 삼한(三韓)은 동해왕의 후세이다.

또한 강화 마리산과 삼랑성에 대한 기록은 단군세기에
"무오 51년(B.C.2283), 임금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祭天)의 단(檀)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바로 그것이다."로 기록되어 있다.

배달전서에는
재위 오십일년 왕검천황께서 셋째 태자 부우를 강화에 보내어 삼랑성을 혈구에 쌓고 제천단을 마리산 꼭대기에 쌓아 하느님께 제 지내도록 명하시었다.이후로부터 각 곳에서 천제단을 쌓았는데 천일 지이를 뜻하여 두 개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한 개의 큰 돌을 얹어서 천단을 만들었다. 재위 육십칠년에 왕감천황께서 황태자 부루를 도산에 보내어 우사공을 만나 오행치수육법을 전하고 나라의 경계를 정하여 유영의 두 주를 조선에 붙게 하고 회대에 제후를 봉하여 다스리도록 하고 우순으로 하여금 감찰하도록 하시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야 제대로 된 신체 구조이지 우리나라 얼간이들의 신체 구조는 팔이 밖으로 굽는 특수한 체질인가 보다. 여기서 얼간이라해서 욕설로 취부할 사람이 있을까하여 밝히고 넘어간다. 얼간이는 국어사전에는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모자라는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있는데 덧붙혀 결론짓자면 "얼이 나간 사람"을 얼간이라고 한다.

그럼 남해 부소암에 설치된 게시판의 내용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리적 상황을 미루어짐작해 본다면 그리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소암이 위치하고 있는 금산은 이성계가 이 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이라 명칭할 정도로 국운의 가늠을 위해 살피는 몇 안되는 곳이 이 곳 금산이다.

그리고 이성계 이전에는 원효대사가 이 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을 보광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외 지금 분란이 되고 있는 서불과차의 장본인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 곳을 왔다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신라의 고승들이 이 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이라 정하고 남해 금산을 중하게 여긴 이유는 단군조선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이성계의 왕권에 대한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이 곳 금산뿐만 아니라 전북 진안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은수사 태극전에 있는 금척수수도다.

 금척수수도가 그려진 유례는 이성계가 산신령에게 금척을 받는 것을 선몽하였다고 전해오는데 이는 이성계가 자신의 왕권에 대한 정통성 강화에 부단히도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성계가 왕권의 정통성 부여에 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개념이 단군왕검이라는 것을 미루어짐작케하는 부분들이다. 이러한 연관성들을 총괄해서 보아도 부소암의 부소가 단군왕검의 아드님이신 부소이겠는가, 아니면 진시황의 아들인 영부소이겠는가.

이런 금산이 진시황으로 얼룩져 있다. 앞서 자리를 깔아놓은 부소암…이제는 각석에 까지 진시황의 전유물로 만드는 작업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앞장서고 있다. 

남해 양아리 각석에 대한 단군조선의 연관성을 뒷받침해줄만한 근거가 없다면 모를까 앞서 언급한 부소암에 얽힌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가늠 할 수 있다.

글의 초입에 언급된 제주의 서불과차를 주제로 한 축제 조성을 굳이 서귀포에서 만들 요량이면 그 곳 지리적 요건과 있는 사실들로만 가지고 개념지으면 될 일을 남해 각석은 왜 가져다 붙히는가.
다시말하지만 남해 각석은 진시황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유물이다. 

강단사학자들 도대체 뭣하는 것인가. 고등학교 교사가 연구해서 밝혀낸 부분을 서귀포시에 제출할 지경에 놓였다. 서귀포시는 묵묵부답이지만… 

고등학교 교사가 밝혀낸 각석에 대해 조금이라도 살펴보았다면 지금 서귀포시에서 각석을 가져다 붙힌 행위가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남해 각석은 아주 오랜시간 동안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다뤄졌을 정도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유물이다. 이 문양에 얽힌 여러 썰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단군조선의 별자리 문양이라는 썰이 가장 무게감을 두고 있는 가운데, 이 문양으로 단군조선 3대 가륵단군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가림토문자에 대한 근거가 될 정도의 비중있는 유물이다.

그런 유물을 뭣이 어쩐다고?

ⓒ hy인산인터넷신문

이런 부조리는 강단사학에서 먼저 발 벗고 나서서 바르게 잡아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강단에 서서 뭘 가르치고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것인가. 중화사관을 조장하고 식민사관을 권장하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인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참으로 부끄럽다.

우리가 중히여겨야 하는 것은 진시황이 오래 살기위해 불로초를 찾아 세상을 뒤지게하고, 그 명을 받고 세상을 뒤지고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거짓으로 일관하던 서불의 우스운 꼴을 만들어 내야했던 서불과차도 불로초도 아니다.

혼자 오래 살고자 불로초에 정신팔려 있는 지도자의 철학을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홍익으로 세상을 두루 이롭게하고자한 우리 민족 성현들의 홍익철학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두 개념을 두고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말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고, 대한민국의 교육자라면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젔다는 것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조선 초기의 문인이며 학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서불을 조롱하다.
인생이 한껏 해야 백년도 되나마나 그나마도 수명 장단 하늘에 달렸거늘
어쩌면 이 세상에 허구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팽조의 나이처럼 산단 말인가
그 누가 삼신산을 보았다더냐, 그 누가 신선의 약을 전한다더냐
하나의 평범한 백성되어서 대단히 높고 높은 임금을 속일려뇨
큰 배 뛰워 동해 먼바다 떠난 뒤로는 까마득히 소식조차 전혀 없더란다.
애매한 삼천명의 동남동녀만이 울며 불며 그 뒤를 따라간다네
천년이 지나간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그들이 불쌍하도다.
嘲徐芾
人生但百歲 壽天且在天 焉能人世間 盡得彭豎年 三山誰所見
仙餌誰所傳 奈何一匹夫 欺詐萬乘主 一舸入東海 漂渺無人覩
三千童男女 呱呱啼啼隨 逐使千載下 緬懷良可悲
김윤국 기자 / 입력 : 2019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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