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 수동면에서 시작하여 함양 상림위천변을 가로 질러 병곡면을 지나 백전면 운산리까지 이르는 벚꽃 50리 길은 봄만 되면 벚꽃으로 가히 장관을 이룬다고 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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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50일 벚꽃길이 유명세를 다게 된데에는 1987년 벚꽃나무 1만 2천그루를 식재하여 준 고 박병헌선생이 있기에 가능할수 있었다.
↑↑ 고 박병헌 전 제일거류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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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일거류민단장을 역임한 고 박병헌선생은 1928년 경남함양군 백전면 평정리 평촌마을에서 태어나 1939년 형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공장기계공으로 일하였다. 이후 주경야독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여 메이지대 법학과에 입학해 22세때 6.25전쟁때는 혈서를 쓰며 참전운동을 전개하는등 제일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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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단장의 애국.애향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1981년에는 운암장학회를 설립하여 연인원 395명에게 3950만원을 지급하였다.
또한 1988년 백전 망월정공원 조성부지 제공 및 2천만원 지원, 2003년부터 벚꽃축제 행사에 5천만원씩 2010년까지 총 4천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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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일본에서 후원회를 결성하여 성금 525억원을 정부에 전달했으며 정부는 그에게 보국훈장삼일장, 대통령방위무공장, 체육훈장, 청룡장, 국민훈장모란장과 무궁화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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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에서 1973년 대성전기(현대성엘텍)을 창업하여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으며 제일한국투자협회설립을 주도하고 신한은행 출범에도 참여했으며 87년에는 세계한인회장대회의 모태인 해외한민족대표자회의를 설립하는데 주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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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청송 박병헌선생은 2011년 3월 7일 지병으로 향년8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벚꽃이 백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듯 서하면사무소에도 치렁치렁한 여인네의 머리결같이 흩날리는듯수양벚꽃이 하늘 거리고 있고 서하초등학교 교정에도 똑같은 벚꽃이 바람에 머리결을 맞기고 하늘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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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면 우회도로에 심어 놓은 벚꽃들은 역시나 고지대라 그런지 이제사 꽃망우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길을 나선 김에 서하 거연정엘 들러 고고한 자태를 뒤로 하고 역시 벚꽃이 활짝피어난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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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정은 고려말 충신인 전오륜의 7세손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1640년(인조18) 경산서원을 짓고 현위치에 억새로 만든 누정을 처음 지었으나 1853년 화재로 불타고 이듬해 복구하였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페령으로 훼철되고 1872년 전시서의 7대손인 전재학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경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하였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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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정은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화림동 계곡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임금의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의 9대소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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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정은 조선 선조때의 학자 지족당 박명부가(1571~1639) 지은 정자이다.
농월정은 글자 그대로 달을 희롱한다는 정자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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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안의 심진동이라 하여 옛 안의현에 세개의 계곡이 있어 안의 삼동이라 했는데 그곳은 용추폭포의 심진동과 수승대 원학동, 농월정 화림동을 일컬었다.
화림계곡에는 8정 8담이라 하여 8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4곳만 남아있다.
농월정 주변에는 너럭바위를 달바위라 부르는데 바위 면적이 정자를 중심으로 1000여평이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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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가 지나간 너럭바위 패인곳에 밤으로 달빛이 비추면 정자에 앉아 시를 쓰던 선비들이 바위 홈에 점점이 고인 물에 비친 달빛을 희롱하여 월연담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