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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암사】 황석산성 순국선열 428주년 추모제향

준안의현감, 조종도전함양군수등 7천여명이 항전 했으나 3.500여명이 전사
김윤국 기자 / 입력 : 2025년 10월 09일
단기4356년

황석산성 순국선열 제426주년 추모제향이 2025년 10월 9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함양군 안의면 황암사에서 군수, 도의원, 군의원들, 순국선열 후손들, 군민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hy인산인터넷신문
↑↑ 소프라노 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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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선규사무국장의 사회로 식전추모공연으로 소프라노 정은선이 '꽃피는 날'
'마 중'등의 추모공연을 하고 헌관소개, 내빈소개, 국민의례, 제단 중앙에 황석산성 
무명순국선열들의 위패와 좌우로 곽준안의현감, 조종도전함양군수, 유명개의사, 정 룡의사,
류 강의사, 정대익의사, 정유문의사, 곽이상정랑, 곽이후정랑등 위패들을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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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초헌관 진병영함양군수가 정수로 손을 씻은후 사당으로 입실하여
분향, 재배하는 강신례를 올리고 헌관들과 참석자들이 재배하는 참신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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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초헌관이 헌작하고 고명효대축이 독축후 재배하는 초헌례를 올리고 아헌례로
아헌관 김순석아헌관이 헌작, 재배하는 아헌례를 올리고 종헌례로 종헌관은
조우재함안조씨문중조종도후손이 헌작, 재배하는 종헌례를 올렸다.
↑↑ 음복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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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모두가 재배하는 사신례를 올리고 초헌관이 술과 안주를 먹는
음복례를 하고 축문을 태우는 분축례를 하면서 추모제향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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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상인추모위원장이 추모사를 하고 초헌관 진병영군수,
김윤택군의장, 김재웅도의원등이 인사말을 하고 내빈들이 분향후 사당 뒤에 있는
의총에 헌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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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암사(黃巖祠)

황암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순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황석산성 전투는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명 중 우군 7만 5천명이 음력 8월 16일에
가또,구로다 등의 지휘로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3일간의 처절한 공방전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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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안의 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의 7개 고을(거창,초계,합천,삼가,함양,안의)의 주민들을 모아 관민남녀 혼연일체가 되어, 피아간의 포격과 함께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과 투석전으로 대항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음력 8월 18일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숙종 4년(1714)에 황석산 밑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라 사액되어 당시 황석산성 싸움에서 순절한 모든 분들이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왔으나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헐리고 추모행사 마저 중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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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황석산성이 사적 제322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지역민의 정성을 모아 2001년 호국 의총을 정화하고 사당을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황석산성은 거창군에서 육십령을 넘어 전주부로 빠지는 요충지에 위치했다. 이에 이원익은 적이 반드시 쳐들어 올것이라 여기고 안음 현감 곽준에게 안음, 거창, 함양 세 읍의 백성과 군사, 식량을 모아서 황석산성으로 들어갔다. 황석산성으로 들어간 이후 조선의 군민은 성을 수축하고, 청야 작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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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진격로의 황석산성이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조선군의 청야 작전으로 인해서 계획보다 못미치는 군량을 수급한 일본군은 황석산성의 식량을 얻기 위해 황석산성을 침공했다.

8월 16일, 일본군은 황석산성을 포위하고 성을 비우고 나가면 추격하지 않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냈으나, 성의 군민들은 항전 의지를 다져 일본군은 전투가 불가피함을 알고 동, 서, 남으로 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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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본군은 가토 기요마사는 남쪽, 구로다 나가마사는 동쪽, 나베시마 나오시게[1]는 서쪽에서 공세를 펼쳤다. 곽준과 조종도가 주축이 되어 일본군을 방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군사수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백사림이 감당하기 힘듦을 깨닫고 가족을 먼저 성 밖으로 내보낸 다음 성문을 열고 도망갔다. 이 틈을 타서 일본군이 성 안으로 돌진해왔다.

조선군은 일본군에 맞서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멸했다. 이때 곽준과 그의 아들 곽이상, 곽이후도 전사했으며 조종도도 전사했다. 성을 함락한 이후 일본군은 성을 뒤지며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고 이러면서 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은 황석산성을 함락한 이후 곡물을 확보하고 전라도로 진군했다. 이러면서 후방의 위협도 제거하고 곡물을 확보하는 일거양득을 거두었다. 이 여파로 전주성까지 함락되는 무참한 결과로 이루어졌다.
↑↑ 황암사 앞을 흐르는 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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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국 기자 / 입력 : 2025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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