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세계유산 남계서원에서는 춘기제향을 2025년 3월 19일 오전 10부터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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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명성당에 모인 헌관들과 유림, 내빈들이 상읍하고 진병영군수가 잠시 들러 인사말을 한후
명성당 뒤 사당에서 점촉, 개독, 분향하는 전폐례를 올리고 술을 받아 술을 조금 처서
모사위에 세번에 나누어 붓고 젯상에 올리고 강신후 일동재배하는
참신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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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초헌관 박충호제관이 첫 잔을 올리는 초헌례를 올리고
정인상대축이 축문낭독후 초헌관이 재배하는 초헌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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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헌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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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헌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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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헌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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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김광곤학생이 아헌관이 되어 헌작, 재배하는 아헌례를
올리고 종헌관 강정순전행정과장이 헌작, 재배하는 종헌례를 올리는데
헌관들이 모두 일두 정여창선생 신위와, 개암 강익선생 신위,
동계 정온선생 신위등에 순서대로 제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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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복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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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축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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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초헌관이 제주와 안주를 먹는 음복례를 하고 지방과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를 하면서 제향을 마치고 자리를 명성당으로
옮겨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종친대표, 이창구남계서원원장등이 강평례를 한후
맛있는 밥을 나눠먹으며 선조들의 덕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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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두선생 신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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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 개암(介庵) 강익(姜翼)에 의해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심(道心) 회복(유학 교육)’과 ‘일두(一蠹)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蘫溪)’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년)에 나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년)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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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은 경사의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앞쪽은 강학공간, 뒤쪽은 제향공간이라는 전학후묘(前學後廟) 서원의 독창적 건축 배치형식의 기준을 마련하였고, 이후 건립되는 서원들의 전형이 되었다. 함양 남계서원은 1868년(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경남 유일의 존속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9년 등재되었다.(남계서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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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평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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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두 정여창선생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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