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4355년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강경환), 부여군(군수 박정현)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부여 군수리사지 발굴조사 중에 새롭게 확인한 백제 사찰의 중문터와 남회랑터 기단석 조사 성과를 발굴현장에서 14일 오전 10시 공개한다. * 발굴현장: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22-1번지 일원
부여 군수리사지는 일제강점기(1935~1936년)에 목탑터, 금당터, 강당터 등이 조사되면서 금동제 불상과 기와, 전돌 등이 출토되어 백제시대 사찰로 확인된 바 있다. 이후 2005~2007년, 2011년에는 정확한 가람배치와 규모를 확인하고자 금당지, 목탑지, 동편일대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었다. 하지만 군수리사지의 중문터는 일제강점기에 목탑터 남쪽에서 발견된 기와 무더기 인근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만 되었을 뿐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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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인산인터넷신문 |
| 이번 조사를 통해 목탑터 중심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곳에서 남동쪽 모서리에 놓인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가 발견되면서 중문터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처음으로 파악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중문의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로 약 14m로 추정된다. * 중문: 대문 안에 세워진 문으로, 사찰에서 중심건물의 앞쪽에 세워지고 좌우에 회랑이 연결되는 문 * 회랑: 사찰이나 궁궐에서 주요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이 있는 긴 복도 * 기단석: 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진 후 터보다 한층 높게 돌로 쌓은 단 또한 남회랑터에서도 남쪽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 일부를 확인하였는데 중문보다 좁은 기단을 갖춘 회랑(回廊)이 중문의 동쪽으로 약 10m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다만 중문과 남회랑의 서쪽 부분은 사찰 폐기 후 축조된 백제시대 도로(남-북 방향)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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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조사에서 확인된 군수리사지 목탑과 금당의 기단이 벽돌이나 기와를 세우거나 쌓아서 만든 것인데 반해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중문과 남회랑의 기단은 돌로 만든 석축기단이 특징이다. 중문의 기단석은 ‘ㄱ’자 형태로 잘 다듬은 모서리 지대석(地臺石)으로, 그 윗면에 턱이 마련되어 있어서 이곳에 우주석(隅柱石)을 끼워 놓고 그 위에 납작한 갑석(甲石)을 얹은 가구식(架構式) 기단 구조로 추정된다. * 가구식 기단: 지면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우주석과 면석을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수평으로 길게 갑석을 얹어 목가구를 짜듯이 짜임새 있게 만든 석축기단 * 지대석: 성벽이나 건물지 맨 아래 부분에 하중을 지탱할 힘을 높이기 위해 놓은 기초석 * 우주석: 기단 모서리에 세워지는 기둥석 이번에 확인된 중문터와 남회랑터는 백제 사비도성 내부에 위치한 사찰인 군수리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중문의 가구식 기단은 부여지역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것으로, 백제 사찰의 중문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부여군과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며, 백제왕도 핵심유적인 부여 군수리사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지원하여 백제 사비기 사찰문화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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