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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4355년
지리산 통신 5/지안재 백남구 구월이 우리 곁을 떠나갈 무렵 난생처음 지안재를 만났다. 지안재는 함양에서 마천으로 넘어가는 길 중간에 있는 굽이굽이 아름다운 고갯길이다. 60년대에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과 지리산 정령치로 가면서 넘었던 현기증이 날 것 같던 굽잇길들이 떠올랐다. 빤히 보이는 고개를 향하여 거대한 뱀처럼 구불구불 돌고돌아 오르는 길이라니! 마침 오후의 햇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려오는 바이크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굽잇길의 끝에 차를 멈추었다. 포토존에 올라 인증샷을 찍고 나서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고갯길이 길 저편에 있는 마을과 그 너머에 버티고 선 산자락과 한몸인 듯 이어져 있었다. 지안재는 원래 '제한역蹄閑驛'에 가까이 있어 제한재라고 불리다가 '제'가 '지'로, '한'이 '안'으로 바뀌어 '지안재'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蹄 자가 '굽'을 뜻하니까 고갯길이 말굽이나 소굽처럼 구부러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지리산문학관에 초빙작가로 선발되어 입주하러 가는 길에 지안재와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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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인산인터넷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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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에서 장규재 상주작가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가람 선생의 수제자인 사봉史峰 장순하張諄河 선생이 문학관에 상주하면서 지안재를 '가나다라길'로 고쳐 부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갯길의 모양이 S자를 3개 이어붙인 것과 같아 그 안에 ㄱㄴㄷㄹ이 모두 들어 있으니 ‘가나다라’ 아닌가. 가나다라길은 우선 쉽고도 아름다운 순우리말 이름이면서 더불어 리듬이 재미있다는 점을 생각하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가람의 맥을 이은 최고의 시조시인이 궁리 끝에 지은 이름이니 오죽하랴. 그러한 선생의 생각에 뜻을 같이한 문화관광해설사 한 사람이 관광객을 안내할 때마다 지안재를 '가나다라길'로 부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얼마나 많은 마을 이름이며 고개 이름 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에서 어렵고 까다로운 한자말로 바뀌었는가. '새터'가 '신기新基'로, '새재'가 '조령鳥嶺'으로, ‘한밭’이 ‘대전大田’으로, '내'가 '천川'으로,...... 서구의 영향으로 국적을 알 수 없는 외래어가 판을 치고,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의 대중 매체에도 외국어와 외래어가 남발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 않아 '새터'는 'New Town'으로, 고개는 'Hill'로, '내'가 'River'로 바뀌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조상 대대로 불리어 오던 아름답고 정겨운 이름들을 찾고 살림과 동시에 우리 땅에 우리말을 심는 일에 힘써야겠다. 그 시작으로 지안재를 '가나다라길'로 바꿔 부르면 좋겠다.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통틀어 자기 것을 천대하고 남의 것을 숭배하는 민족은 이민족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나니.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