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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4355년
조선시대 의병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신암 노응규의병장의 추모제가
2022년 4월 12일 오전 11시 30분부터 함양군 안의면 신암사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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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태경안의면직원의 사회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초헌관 기진태위원장,
아헌관 전일옥안의면장, 종헌관 광주노씨문중대표 노저용박사,
축관 노유연씨등 헌관 소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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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초헌관이 전폐례를 올리고 기진태초헌관이 헌작.재배하며
초헌례를 올리고 노유연축관이 독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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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전일옥면장이 헌작.재배하며 아헌례를 올리고 노저용종헌관이
헌작.재배하며 종헌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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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초헌관이 음복례와 분축례를 하고 초헌관이 추모사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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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응규의병장은 1861년 3월 15일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당시 죽전동에서
노이선님의 차남으로 태어나 면암 최익현의 문인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1896년 2월 19일 안의에서 거병하여 장수사 서재기승려를 선봉장으로
삼고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대구에서 내려온 관군과 함께 싸워 승리하였고
함안, 마산, 진해등지의 의병을 합쳐 한때 1만명이 넘었고 김해를 공격하여
양곡의 일본 반출을 저지한 바 있고 1907년 1월 21일 서울 진군을
계획하고 있을때 밀정에게 그 기밀이 누설되어 노응규이하 서은구,
엄해윤등 핵심 인물들이 1907년 1월 황간분파소 순검들에게 일시에
체포되어 경성 경무감옥소로 압송되어 2월 9일 발병하여 그해
2월 16일 47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1977년 1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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