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방은 서악묘(가뭄과 홍수로부터 백성들을 보호나는 화산신. 곧 이랑신의 여동생인 삼성모를 기리기 위해 한나라 무제때 건립된 사당)에 보관되어 있는 천위지척의 복사본이다.
ⓒ hy인산인터넷신문
1시간 가량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6명이 탑승하여 화산 서봉을 향해 출발하여 4.210m 길이의 케이블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한 끝에 암벽을 뚫어 만든 하차장에 내렸다.
중국 산동성 태산, 호남성 형산, 산서성 황산, 하남성 숭산과 섬서성 화산이 오악에 속하듯이 깍아지른 바위산으로 이뤄져 있어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산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실크로드 대상들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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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부슬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린 날씨라 사진촬영은 별로 못하였으나 눈으로 많은 것을 담기에 바쁜 걸음을 옮겼다.
차창 밖으로 비에 젖은 화산을 스치며 서안시내로 들어와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 감자탕으로 굿은 날씨를 날려버렸다.
10일 아침 호텔식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섬서성 박물관에 들러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유물들을 구경하다 한혈마가 돌궐족을 발로 밟고 있는 석상을 발견하였다.
↑↑ 회족거리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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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사람들이 그렇게나 갖고 싶어 하던 한혈마를 얻은후 너무 기쁜 나머지 돌궐족을 정벌할수 있다는 강한 꿈같은 희망을 담아 표현해 만든 석상이라고 한다.
이후 장안성으로 자리를 옮겨 비가 내리는 장안성을 걸오본다.
장안성은 동서가 9.7km이고 남북이 8.6km로 12개의 성문을 가진 높이 5m의 성벽으로 이뤄졌다.
이어 점심식사후 비림으로 향했다.
↑↑ 회족거리 한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대나무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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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박물관에 들어가니 장안성 종루에 걸려있던 진짜 종을 보관하는 종각이 있고 비림이라 쓰인 현판 아래에는 당현종 이륭기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새긴 ‘개원천보비’라는 비가 서있는데 일명 석대효경비라고 읽는다.
석대효경비는 효경에 나오는 구절을 당현종이 아들에게 인용하여 보낸 편지 내용으로 아비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며느리를 아비에게 보내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 양귀비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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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에는 1실부터 4실까지와 석각예술전시실등이 있다.
1실에는 개성석경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이는 12종류의 유가 경전 즉 주역, 상서, 시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공연전, 춘추곡량전,
효경, 논어, 이아등 모두 114개의 돌판 228면에 65만자나 된다.
2실에는 당아나의 유명한 비석 위주로 모두 서법을 배우는 우수한 체본이다,
3실에는 역대의 각종 서체로된 진귀한 비림이 진열되어 있는데 진나라의 사마방비는 예서에서 해서로 변화 발전한 전형적인 글씨체이다.
↑↑ 병마용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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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실에는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석가도화가 있다. 송나라 시기에 새긴 왕유화축, 청나라 시기에 새긴 금자상, 달마상들이 있다.
실컷 구경했으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일품식당에서 삼겹살에 된장찌개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현장법사가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고 있는 대안탑과 현장법사상을 구경하고 서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 진시황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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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호텔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역시 간단하게 먹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나라 경제묘 일부를 발굴한 지하관을 둘러 보았다.
한무제의 아버지이기도 한 한경제 묘 주변에는 역시 병마용과 각족 가축모양의 토용들이 나왔는데 자그마한 인형수준으로 생겼다. 한경제는 한문제의 제5황자로 기원전 157년 황제로 즉위하여 아버지 문제의 정치를 이어 받아 중농정책을 펼치고 세금을 줄이는 등 경제의 치세를 문제의 치세와 함깨 "문경지치"로 칭송하기도 하였다.
↑↑ 서안 화산 서봉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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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서안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고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였다.
서안은 영원히 평화가 지속되라는 뜻으로 장안이라 불렸으며 주나라를 포함해 진.한.당등 13개 왕조가 1.100여년 동안 수도로 사용한 고도라 그런지 도시전체가 지하 박물관이라 불릴정도로 유적이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