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고려인들이 1860년대 두만강을 건너 지신허 마을을 세웠고, 개척리에 대규모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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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기념비 세 개의 석조물 중 가운데는 ‘한국’을, 좌측은 ‘북한’을, 우측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의 한민족을 상징한다고 한다. |
| ⓒ hy인산인터넷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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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11년 제정러시아는 콜레라 창궐 등 갖가지 구실을 만들어 한인들을 구한촌에서 아무르만 산기슭 신한촌 기념비가 세워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읽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하여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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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인 2세 신 발료자씨가 머무는 관리사무실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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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인 2세 신 발료자씨가 머무는 관리사무실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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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은 지난 1999년 해외한민족연구소가 한국의 한 사업가의 지원으로 건립했다. 탑은 커다랗고 기다란 석조물 세 개로 이뤄져 있었다. 기념탑 관리는 고려인 2세 신 발료자씨가 신한촌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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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인 2세 신 발료자씨가 머무는 관리사무실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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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기념 탑문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선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 당하자
국내외 지사들은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성명회와 권업회결성, 한민학교설립, 신문발간, 13도의군 창설 등으로
민조격량을 배양하고 1919년에는 망명정부(대한국민회의)를 수립하여
대일 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민족은 1937년 불행하게도 중앙아시아에 흩어지게 되고
신한촌도 페허가 되었다.
이에 해외한민족연구소는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이 기념탑을 세운다
1999년 8월 15일 한국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