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1934년, 서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살았나
- 서울역사박물관, 1934년 서울(경성)의 최하위 행정단위인 각 정町과 동洞의 직업별·민족별 호구를 보여주는 1936년 이전의 유일한 자료 - 영인한 원문과 함께 원문을 표로 작성해 관련 연구자들에게 편의 제공 - 지도와 그래프 등 시각 자료로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 - 자료집을 통해 1934년 서울의 도시 성격과 서울 사람들에 대한 연구와 기억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
정호 기자 / 입력 : 2017년 08월 21일
서울역사박물관은 소장유물자료집8『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各町洞職業別戶口調書』를 발간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인구 관련 자료 중 하나인 『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는 1934(소화9)년 말 현재 서울(경성)의 인구를 최하위 행정단위인 정町과 동洞을 기준으로 내지인(일본인), 조선인, 외국인의 민족별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8개(농·임·목축업, 어업·제염업, 공업, 상업·교통업, 공무·자유업, 기타 유업자有業者, 무직자, 직업을 신고하지 않은 자) 직업별 범주로 분류한 통계자료이다. 호구는 호수와 인구를 지칭하는데, 호수는 다시 주거와 세대로 구분하였고, 인구는 남녀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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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서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살았나 – 전국은 농업, 서울은 상업 당시 전국 조선인의 직업 분포는 농·임·목축업이 75.1%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서울의 조선인은 상업·교통업이 31%로 가장 많고, 다음이 기타 유업자 22.8%, 공업과 공무·자유업이 각각 12.9%, 12.5%로를 차지했다. 일본인은 전국적으로 보면 공무·자유업, 상업·교통업에 각각 42.2%, 26.9% 종사하였는데, 서울의 일본인은 공무·자유업(39.4%)이 상대적으로 낮고 상업·교통업(34.6%) 비중이 높다. 외국인은 전국적으로 보면 상업(45.9%), 농업(21.8%), 공업(14.3%) 순이지만, 서울 외국인들의 직업은 상업(61%)이 압도적으로 높다. 1934년, 서울 사람들은 어디에 살았나– 북촌, 그리고 을지로 남쪽과 남대문 주변 1934년 서울에는 조선인, 내지인(일본인), 외국인(특히 중국인) 등 동아시아 3국의 사람들이 서울 사람으로 살았다. 침략자와 상인으로 서울에 와서 서울 사람이 된 이방인들과 조선인들은 어디에 살았을까. 1934년 서울은 을지로(황금정)을 기준으로 일명 북촌에는 조선인들이, 남촌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1910년대 감소하던 중국인들은 1920년대 후반이 되면 남대문로 2·3가 서쪽으로 중국인 거리를 형성하였다. 서소문정(1164명), 태평통2정목(642명), 장곡천정(621명), 북미창정(201명)의 외국인들은 대다수가 중국인이었다. 관련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지도와 그래프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로 자료집을 꾸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서호철 교수는 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가 어떻게 우리 앞에 나왔는지, 호구조서의 그 많은 숫자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각종 표와 그래프, 당시의 지도를 활용해 시각적 이해를 높여 일반 대중들이 접근하기 쉽게 기획하였다. 또한 원문을 그대로 표로 작성해 관련 연구자들이 호구조서를 보다 쉽게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정호 기자 /  입력 : 2017년 0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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