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출신 항일의병대장인 노응규(1861~1907)의병장을 기리는 추모제향이 임창호 군수, 임재구 군의회의장, 진병영 도의원, 관내 기관·단체장, 노씨 종친회, 이장,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  | | | ⓒ hy인산인터넷신문 | |
노응규의병대장 추모기념사업회(회장 하영복)는 12일 오전 11시 안의면 대밭산 입구에 있는 항일독립투사 사적공원에서 신암 노응규 의병대장 추모제를 올리고 숭고한 뜻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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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제에서는 조성제 안의면장이 추모사를 하고, 김내현 서하면장이 초헌관을, 하영북 기념사업회회장이 아헌관, 노원상 노씨종친회 함양지부회장이 종헌관을 맡았으며, 집례는 이대근 안의면 총무계장, 제집사는 안의향교 장의들이 맡아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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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추모제는 장렬하게 전몰한 신암 노응규 의병장 이하 500명 의병의 영혼을 위로하고 애국정신을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매년 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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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응규 의병장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1896년 의병을 모집해 승려 서재기 의사를 선봉장으로 삼고, 문인 정도현·박준필·최두원·최두연·임경희·성경호 등 참모진 8인과 별동부대 500명, 대포 4문으로 하루 밤과 이틀 낮을 행군해 진주성을 공격해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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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군이 주둔한 부산항을 공략하기 위해 김해에서 공격을 준비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의병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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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의병대장은 이 자리에서 다행히 화는 피했으나 을사늑약후 1906년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구국항일기치를 높이 들고 충청도·경기도·전라도의 분기점으로 들어가 경부철도와 일본군시설을 파괴하는 등 맹렬한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1907년 체포됐으며, 옥중 단식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