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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근산성, 왜구의 침입을 피로 지킨 영호남의 길

- 삼국의 접경에서 왜구의 내륙전, 사근역과 이덕무의 기록까지
한용택 기자 / 입력 : 2026년 10월 14일
단기4359년

함양 수동면 연화산에 오르면 산성의 성격이 지형에서 먼저 드러난다. 해발 443m의 산줄기는 남강을 끼고 있으며, 동·남·서 세 방향은 절벽과 강물이 자연 해자를 이룬다. 
↑↑ 2019년 9월 28일 추모제향 살풀이춤
ⓒ hy인산인터넷신문
북쪽으로는 함양과 안의 방면이 열리고, 남쪽과 동쪽으로는 산청과 진주로 이어지는 길이 내려간다.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남원과 장수로 연결된다. 사근산성은 산 위에 돌을 쌓은 군사시설이면서 영남과 호남을 잇는 길목을 장악한 교통 요새였다.

사근산성에 대한 국가유산 자료에는 성의 둘레를 약 1,218m로, 연화산 능선을 따라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분류한다. 발굴조사에서는 능선 바깥쪽에 돌을 쌓고 안쪽을 흙과 막돌로 채우는 편축 방식이 중심을 이룬 사실이 확인되었다. 장방형 석재를 ‘품(品)’자형으로 맞물리게 쌓고, 지형에 따라 성벽 폭을 달리한 축성기법도 확인된다.
↑↑ 함양군 수동면 사근산
ⓒ hy인산인터넷신문

성벽 너비는 대체로 5m 안팎이며 일부 구간은 4~9m에 이른다. 최대 잔존 높이는 약 4.4m다. 남문지는 너비 약 2.5m, 길이 약 6m 규모로 확인되었고, 성 안에서는 건물터와 문터, 지름 약 14m의 석축 연못이 발견되었다. 정상부에는 봉수대로 추정되는 석축 흔적도 남아 있다.

이 성의 시작은 삼국시대로 올라간다. 함양은 백제와 신라가 맞닿던 서부 경남의 경계 공간이었다. 백제는 남원과 장수를 거쳐 동쪽으로 압력을 가했고, 신라는 함양과 거창, 산청을 연결하며 서부 방어선을 만들었다. 사근산성의 축성법은 함안 성산산성, 창녕 목마산성, 거창 거열산성 등 신라 산성과 비교되는 특징을 보인다.

학계에서는 빠르면 6세기 중엽, 늦어도 고려 말 이전에 군사적 기능을 갖춘 산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특히 7세기 중반 신라와 백제의 각축이 거셌던 서부 경남의 정세를 보여주는 성곽으로 평가된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사근산성의 성격은 길과 함께 보아야 선명해진다. 산성 아래에는 고려 때부터 사근역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사근도를 두고 찰방을 파견해 경상도 일대 14개 속역을 관할하게 했다. 사근역은 오늘날의 역과 우체국, 관용차량 관리소, 출장소 기능을 합친 국가 교통망의 중심지였다.

역마를 공급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사신과 관리의 이동을 지원했다. 군사적으로는 병력과 정보가 움직이는 통로였고, 경제적으로는 물자와 사람이 오가는 길목이었다. 사근산성은 그 길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통제하는 방어기지였다.
ⓒ hy인산인터넷신문

1380년 여름, 이 길은 고려 말 최대 규모의 왜구 전쟁터로 바뀌었다. 그해 8월 왜구는 500척의 선단으로 금강 하구 진포를 공격했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를 실은 고려 수군이 왜선을 불태우면서 해상 전투는 고려군의 승리로 끝났다. 
바다에서 퇴로를 잃은 왜구 상당수는 내륙으로 이동했다. 옥천과 영동, 황간을 지나 상주와 선산을 휩쓸고 경산을 거쳐 함양으로 들어왔다. 고려의 도로와 역참망이 평시에는 국가의 혈관이었지만 전시에는 적군의 이동로로도 이용되었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왜구가 함양의 사근내역에 주둔하자 고려군도 병력을 집중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후대 지리지에는 배극렴을 비롯해 김용휘, 지용기, 오언, 정지, 박수경, 배언, 도흥, 하을지 등의 장수가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전한다. 함양의 감무 장군철도 백성을 이끌고 산성에 들어가 방어에 나섰다. 
이 전투에서 박수경과 배언을 비롯해 사졸 500여 명이 전사했다. 고려군은 큰 피해를 입었고 함양 지역의 방어선도 무너졌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사근산성 전투의 기억을 가장 강렬하게 전하는 이름이 ‘혈계(血溪)’다. 전사한 병사들의 피가 냇물을 붉게 물들여 그 물길을 혈계라 불렀다는 전승이다. 18세기 사근도찰방으로 부임한 실학자 이덕무는『청장관전서』에서 이 이야기를 직접 기록했다. 
그는 1380년 왜구가 사근역에 주둔했고, 고려군이 사근역 동쪽 약 3리 지점에서 싸웠으며, 박수경과 배언을 비롯한 500여 명이 전사해 시냇물이 붉어졌다고 적었다. 이어 지역 사람들이 ‘혈계’라는 이름을 꺼려 ‘국계(菊溪)’라고도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덕무의 기록은 중앙의 전쟁사가 지역 사람들의 언어와 기억 속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사근산성 전투는 패전으로 끝났지만 1380년 왜구 토벌전 전체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에 놓인다. 군사사 연구에서는 진포전투, 사근내역전투, 남원성전투, 황산전투를 하나의 연속된 작전으로 해석한다. 진포에서 선박을 잃은 왜구는 내륙으로 몰렸고, 고려군은 계속 추격하며 이동 공간을 압박했다. 
사근에서 고려군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왜구 역시 남원 방면으로 밀려 내려갔다. 남원 일대에서 다시 저항을 받으며 운봉고원으로 이동한 왜구는 결국 황산에서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과 맞붙었다. 사근의 패전과 황산의 승전은 같은 전역 안에서 이어진 전투였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이 흐름에서 사근산성의 위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영남에서 호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장악한 사근이 무너지자 왜구는 남원 방면으로 진출했다. 반대로 고려군에게 사근은 왜구를 남원과 지리산 권역으로 몰아가는 추격전의 중요한 지점이었다. 
사근의 희생 뒤에 황산대첩이 이어졌다는 서사는 역사적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함양의 사근산성과 남원의 황산은 고려 말 왜구 토벌전이라는 하나의 전쟁 지도 위에서 연결된다.

조선이 들어선 뒤 사근산성은 전쟁의 성격에서 교통과 행정의 성격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사근산성을 함양군 동쪽 17리, 사근역 북쪽에 있는 성으로 기록하고, 둘레 2,796척, 높이 9척, 성 안에 못 세 곳이 있다고 적었다. 
조선 성종대에는 성을 보완해 쌓았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산성 아래 사근역은 더욱 중요해졌다. 
세종대 역로 정비 과정에서 사근도는 경상도 남서부의 대표적인 역도로 자리 잡았고, 찰방이 14개 속역을 관할했다.

18세기 후반 사근역에는 한국 실학사의 중요한 인물이 머물렀다. 이덕무는 1781년 12월 사근도찰방에 제수되어 이듬해 2월 임지에 도착했고 약 2년 동안 사근역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그는 규장각 검서관 출신의 학자이자 문인이었고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박지원과 교유한 북학파 지식인이었다. 
사근도찰방 시절에는 역민을 괴롭히던 오래된 공채의 이자 부담을 살펴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이를 혁파하는 데 힘썼다. 박지원이 쓴 행장에도 이덕무가 역민의 폐단을 줄였다는 평가가 전한다.

이덕무는 사근에서 전쟁의 흔적만 기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기떼에 시달린 초가을 밤, 지역에서 쓰는 낯선 방언, 가난한 찰방의 밥상, 선배 찰방들이 남긴 흔적까지 세세하게 적었다. 
『청장관전서』의 「한죽당섭필」은 사근역과 함양 일대의 풍경과 사람, 생활을 담은 지역 생활사 자료다. 사근산성 아래의 길이 전쟁과 행정, 문학과 생활을 함께 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이덕무 이전에도 사근도찰방을 거쳐간 문인과 관리들이 있었다. 조선의 찰방은 역민과 역마, 사신 접대, 공문서 전달을 관리하는 종6품 관직으로 교통행정의 현장 책임자였다. 
사근역의 선생안에는 여러 인물이 이름을 남겼고, 이덕무는 그 가운데 이인상이 선정을 베푼 인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과 그가 경영한 수수정의 존재까지 기록했다. 
사근이라는 이름은 성곽 하나를 넘어 조선시대 영남의 길과 사람을 연결한 행정문화의 중심을 뜻했다.

산성 자체도 오랜 시간 여러 차례 손질되며 살아남았다. 발굴조사는 성벽의 폭과 축조 방식이 구간마다 다른 점을 확인했다. 
능선의 암반 위에서는 비교적 좁게 쌓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간에서는 뒤채움 폭을 넓혔다. 일부 서벽에서는 바깥 성벽 하부를 삼각형 단면으로 보강한 기단 보축 흔적이 확인된다. 
이는 지형 조건에 맞춰 성벽의 안정성을 확보한 고대 토목기술이다. 
성벽을 단순히 돌담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면, 사근산성은 1,200m가 넘는 능선을 따라 지형과 구조를 결합한 대규모 군사토목시설로 읽힌다.

성 안의 연못도 중요한 시설이다. 포위전이 길어질수록 식수 확보는 산성의 생존을 좌우한다. 
사근산성에서는 지름 약 14m의 석축연못이 확인되었고, 일정 수위가 차면 물이 넘치도록 일부를 절개한 구조가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성 안의 못 세 곳을 기록한 점과 연결하면, 물 관리가 이 산성의 핵심 방어체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봉우리를 자연스럽게 감싸는 성곽 배치 덕분에 별도의 치성과 각루를 많이 두지 않고도 주변을 감시할 수 있었다.

사근산성 주변에는 함양의 역사가 층층이 놓여 있다. 서쪽에는 가야계 고분군인 백천리고분군이 있고, 북쪽에는 승안사지가 있으며, 가까운 원평리에는 조선 성리학의 상징인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이 자리한다. 한 공간 안에서 고대의 산성, 중세의 역참, 조선의 서원이 서로 이어진다. 
수동면은 군사·교통·학문이 겹쳐 있는 함양 동부의 역사 회랑이다.
ⓒ hy인산인터넷신문

1966년 사근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이어졌고, 2000년대부터 훼손된 성벽과 문지에 대한 정비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2013년에는 1380년 전투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사당이 세워졌다. 지난 10월 13일 수동면 사근산성 추모사당에서 제646주기 순국선열 추모제향이 봉행되었다. 
646년 전의 전투가 오늘까지 지역 공동체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근산성의 현재적 의미다.

사근산성의 정체성은 네 겹으로 읽을 수 있다. 첫째는 신라와 백제가 마주 선 접경의 성이다. 둘째는 1380년 왜구와의 전투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희생의 성이다. 셋째는 영남과 호남을 잇는 사근역과 함께 국가 교통망을 지킨 길의 성이다. 
넷째는 이덕무가 지역의 전쟁 기억과 생활을 글로 남긴 기록의 성이다. 성벽과 전투만 강조하면 사근산성의 절반만 보게 된다. 길과 사람, 행정과 문학까지 함께 읽을 때 이 산성의 전체 모습이 드러난다.

함양의 역사문화 전략에서도 이 연결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사근산성 정상의 성벽만 보고 내려오는 탐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근역 터, 혈계로 전해지는 죽산천 일대,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백천리고분군을 하나의 역사길로 묶을 수 있다. 
‘사근 역사길’은 삼국의 국경, 고려의 전쟁, 조선의 역로와 성리학을 한 동선에서 읽는 콘텐츠가 된다. 전투 지형을 3차원으로 복원하고 1380년 진포-사근-남원-황산의 이동경로를 지도화하면 사근산성의 전국사적 의미도 훨씬 분명해진다.

사근산성은 패전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버틴 사람들의 자리다. 고려군 500여 명의 희생은 함양이라는 한 고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전쟁은 황산대첩으로 이어졌고 고려 말 정국의 흐름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전쟁의 길이 행정과 교통의 길로 바뀌었고, 이덕무 같은 지식인이 그 길에서 백성의 삶과 지역의 기억을 글로 남겼다.

연화산의 돌벽을 따라 걷다 보면 사근산성은 말이 없는 유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벽 아래에는 삼국의 국경이 있고, 돌 사이에는 고려 병사의 피가 스며 있으며, 산 아래 길에는 조선의 역마가 달렸다. 18세기 이덕무는 그 길에 머물며 400년 전의 혈계를 다시 기록했다. 
그리고 오늘 수동면 주민들은 해마다 제향을 올리며 1380년의 이름들을 기억한다.
ⓒ hy인산인터넷신문

사근산성의 진짜 가치는 성벽의 높이에만 있지 않다. 이곳은 함양이 영남과 호남을 잇는 길목이었음을 보여주는 장소이며, 나라의 길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싸우고 쓰러진 장소이며, 그 기억을 후대가 기록하고 이어온 장소다. 
함양의 동쪽 관문 연화산에 남은 1,218m의 돌성은 그렇게 천 년의 시간을 잇는다. 사근산성은 함양의 성곽이면서 대한민국의 길과 전쟁, 기억을 함께 품은 역사현장이다.
박환기 미래도시전략연구원장(전 거제시 부시장)
한용택 기자 / 입력 : 2026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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